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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공부방

똑같은 급여를 받아야 보편주의인가(급여수준으로서의 보편주의)

by 사회복싱맨 2022. 10. 10.

 

지난번 글을 통해서 할당원리로서의 보편주의와 선별주의가 언론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듯 대립적인 반대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2022.10.09 - [사회복지 공부방] - 기본소득 이해의 시작 -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이해(할당원리를 중심으로)

대상을 선별할 때 인구사회학적 기준과 기여 여부를 토대로 대상을 선별하는 것까지는 보편주의로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산조사를 토대로 대상을 선별하는 잔여주의는 보편주의와 대립구도에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 살펴볼 보편주의의 쟁점은 바로 같은 정책의 수혜를 받으면서도 급여의 수준이 다른 경우입니다. ⓐ 정책의 대상에 포함되는 모든 시민에 대해 개별적 욕구와 무관하게 균등급여를 지급해야하는지 ⓑ 개별 욕구를 고려한 차등적 급여를 지급해야하는지 ⓒ 대상 선정이 아닌 급여를 차등지급하기 위해 소득·가구구성 등에 대한 조사가 수반되는 것을 보편주의 할당원리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보편주의 원리 도입시기 균등급여 원칙 : 전쟁의 보상과 베버리지보고서

 

보편주의 원리가 도입되기 시작한 초기 복지국가에서는 균등기여-균등급여가 원칙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복지국가를 지배한 보편주의 원리는 고용상태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동일한 급여가 지급되는 정액급여를 의미했습니다. 이는 보편주의 원리가 권리성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정액기여와 균등급여에 근거한 보편주의 복지정책이 현실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서구사회가 직면한 전쟁(1,2차 세계대전)이라는 공통의 위험이 계기가 되었습니다(윤홍식, 2011). 티트머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 모두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위험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균등급여 원칙에 주효하게 작용하였습니다. 균등급여방식에 기반 한 보편주의는 파시즘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수호한 시민들의 애국주의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더욱이 서구 복지국가는 전후 사회통합과 질서유지를 위해 모든 시민에게 기본선이 되는 동일한 급여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권리성에 기반한 균등급여의 보편주의 원리는 초기 복지국가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베버리지 부부의 견해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베버리지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영국 및 많은 국가의 복지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베버리지보고서에서는 6가지 사회보장의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실업이나 질병 등으로 인한 단절·소득과 관련 없는 생존수준의 정액급여 지급, 둘째 자산정도에 관련 없는 정액 기여금, 셋째 행정책임의 단일화, 넷째 급여의 적절성, 다섯째 모든 사람과 욕구를 포함하는 포괄성, 마지막으로 시민들의 욕구에 따른 대상 분류의 필요입니다. 특히 다섯째 원칙인 포괄성은 "모든 사람과 모든 경우의 위험"을 보호하는 것으로서 보편주의의 원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보편주의 원리는 1,600년대부터 영국 복지제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자산조사와 스티그마로 인해 고통 받던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두 번째 원칙인 정액기여-정액급여를 도입해 복지 혜택을 시민의 권리로서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지은정, 2006).

 

2. 불충분한 균등급여와 중산층의 반발에 따른 차등급여의 도입

 

베버리지보고서가 정액기여-정액급여를 기반으로 권리에 바탕을 둔 초기 보편주의 원칙을 제시했다면, 티트머스는 사회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아 사회통합으로서의 보편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티트머스는 전후 복지국가의 등장과 발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인물입니다. 그는 개인의 합리성을 토대로 작동하는 시장경제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사회정책이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복지국가가 의도적으로 소득 재분배의 목표를 공표하지 않는다 해도 국가가 만든 사회보장 제도에 의해 궁극적으로 소득 재분배가 이루어져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고, 시민들 간 상호의존 문화를 증진시킨다고 보았습니다. 티트머스는 그의 저서 『선물관계(1970)』에서 영국과 미국의 헌혈 제도의 운영사례 비교를 통해 국가에 의한 사회서비스의 보편적 지급을 주장하였습니다(김윤태,2016). 다만 티트머스는 베버리지와 다르게 소득, 주거, 의료, 교육 등의 분야에서 ‘긍정적 선별적 차별’(positive selective discrimination)을 통한 재분배와 불평등 해소를 주장하였습니다.

 

1929년 대공황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기조정적 시장종말·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회 붕괴의 위기는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대표로 하는 복지국가의 시장참여와 재분배를 통해 극복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균등급여 방식의 보편주의 원리가 정당화되었습니다. 사회결속과 질서유지를 통해 전후 복지국가를 완성하고자 하는 국가의 목적과 시민들의 열망이 합쳐진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시민권적 권리로서 주어지던 균등급여방식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존재했습니다. 베버리지 방식의 균등급여는 충분한 정도의 급여를 제공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균등급여 방식은 중산층 생활 유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노동자 계층을 대상으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이러한 균등급여는 중산층의 이해를 노동 계층과 빈곤층으로 이원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균등급여의 불충분한 급여는 중산층의 기대되는 생활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노르딕 복지국가에서는 대상으로서의 포괄성은 유지하면서도 노동시장의 지위 유지를 위해 소득에 근거한 차등급여 방식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대상으로서 보편주의의 포괄성은 유지되지만, 균등급여의 원칙은 노동시장에서의 성과에 비례하여 지급되는 방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를 보편주의 내의 계층화(stratification within universalism)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쨌든 노동시장의 지위에 따라 사회적 위험의 정도가 다름을 인정하고 소득비례급여 방식을 도입하면서 저소득계층과 중간계층 모두를 포용하는 것입니다(이태수, 2011). 소득비례방식의 차등급여 지급은 중간계층을 포섭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복지국가는 더 이상 모든 시민이 동일한 욕구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으며, 기본적 보장 수준을 넘어 개별 시민이 노동시장에서 성취한 상이한 성과를 반영하는 보편주의로 전환된 것입니다(윤홍식, 2011).

 

소득비례방식의 차등적 급여를 더 자세히 이해하는데 미야모토 타로(1999)의 연구가 큰 도움이 됩니다. 그의 저서 『복지국가 전략-스웨덴 모델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스웨덴의 부가연금을 대표적인 소득비례방식의 차등급여 정책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으로는 ‘화이트 칼라’와 ‘소득대체율’ 두 단어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전후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고소득 직종(화이트 칼라)의 비율이 초기 복지국가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농민층을 초과하였고, 낮은 수준의 균등급여로는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스웨덴은 강력한 노조와 완전고용, 연대임금정책 등으로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더 이상 복지국가의 주요한 목적은 균등급여를 통한 빈곤의 구제나 최저생활보장이 아니었습니다. 복지국가의 목표가 빈곤의 구제가 아닌 이전의 소득대체를 가능하게 한 소득비례형 차등급여를 통한 질병·출산·실업·노령 등으로부터의 시민 선택의 자유를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보편주의 가치이념의 차원으로는 전후 초기의 공동체주의(communitarian)적 가치에서 경제성장 후의 리버럴 한 개인의 자율을 강조하는 가치이념으로의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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